The missionary activities of Bishop Berneux i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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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조선대목구장인 베르뇌 주교는 1856년 3월에 입국하여 1866년 3월 새남터에서 순교할 때까지 10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했다. 그사이 조선대목구의 체제를 정비함과 동시에, 대목구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사업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대목구의 수입 규모와 각 사업의 소요 비용을 살펴보는 것은, 대목구의 활동을 전체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이 글은 이러한 비용이 어떻게 마련되고, 어디에 쓰였는지를 살펴본 것이며,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BR> 조선대목구의 수입은 전교회 지원금, 성영회 지원금, 파리외방전교회의 지원, 물품 판매금, 이자 수익 등이며, 파리·홍콩·심양·일정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교회가 조선대목구에 지원한 금액은 1년에 평균 24,206프랑이며, 성영회의 지원금은 6,182프랑, 파리외방전교회의 지원은 6,910프랑 정도였다. 따라서 조선대목구의 1년 수입은 평균 37,298프랑이며, 현재의 가치로는 4억 원 정도가 된다.<BR> 다음으로 지출 항목은 선교사 생활비, 동거하는 신자 가족의 생활비, 선교사 영입 비용, 심양에 있는 자금과 물품의 운송비, 신학생 양성비, 물품 구입비, 인쇄소 운영비, 성영회 사업비 등이 있다. 지출 금액은 총 22,991프랑으로 수입의 61.64% 정도가 된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지출 항목이 많고, 또 알려진 항목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비용이 증가했을 것이므로, 실제 비용은 22,991프랑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BR> 그럼에도 총지출은 총수입보다 적었다. 베르뇌 주교는 남은 자금으로 시약소와 고아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고자 했고 예비 신학교도 늘리고자 했다. 그러나 박해의 위험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다가 병인박해를 맞이했다.
Publication details
- DOI
- 10.35162/rfkch.2021.12.59.59
- OpenAlex
- W4206157022
- Document type
- article
- Language
- EN
- Source
- 교회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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